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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서원터는 고려초 국가사찰 있던 곳?
금강방울 등 국보급 유물 총 77점 출토
학계 "11세기 이전 고려 초 작품으로 추정"
기사입력 2014.08.21 17:04:17 | 최종수정 2014.08.21 22: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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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구 도봉산 입구에는 신라 말 고려 초 대표적 선종 사찰인 `도봉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불교 국가였던 고려는 공공여관인 역원(驛院)을 운영하면서 주요 교통로의 길목에 위치한 큰 사찰에 원을 겸하게 했다. 도봉원이 그중 하나다.

현재 이 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도봉계곡 반대편 300m 거리에 1960년대 지어진 도봉사라는 절이 존재하지만 국가적 사찰이 있었던 장소로는 면적이 현저히 좁아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조선 중기 건립된 도봉서원 터에서 고려 시대 도봉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10세기 안팎의 불교 유물이 다량으로 쏟아져나와 비상한 관심을 끈다. 유물은 고려 시대 각종 불교의식이나 공양에 사용한 금강령ㆍ금강저ㆍ향로ㆍ발우 등 66건 77점에 달한다.

문화재청과 서울문화유산연구원은 관련 유물 일체를 21일 오전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공개했다. 조사단은 서울특별시기념물 28호인 `도봉서원과 각석군( 刻石群)` 복원정비계획에 따라 2012년 5~9월 본격 발굴 조사를 실시해 도봉서원이 조선 초기까지 존재한 사실이 확인되는 영국사라는 사찰 터에 건립된 사실을 확인했다. 영국사(寧國寺)는 조선 초기 창건됐지만 조선 선조 6년(1573년) 철거되고 그 자리에 도봉서원이 대신 세워지면서 성리학의 성지로 인식됐다.

조사단은 도봉서원 터 중심을 이루는 제5호 건물 터(동서 12.63m, 남북 12.74m)가 원래는 영국사의 중심 건축물인 금당 혹은 대웅전을 그대로 활용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 건물 터 아래에서는 영국사를 세울 당시에 부처를 공양하기 위해 묻었을 것으로 보이는 불교용구를 넣은 청동솥이 발견됐다. 여기서는 불교 밀교 의식에서 수행 때 손에 쥐는 무기 모양의 금동제 금강저(杵ㆍ방망이)와 방울을 단 금강령, 청동제 뚜껑항아리와 뚜껑합(盒), 현(懸)향로와 부형대향로(솥모양 향로), 수각향로(짐승 다리 모양 받침대를 갖춘 향로) 등도 수습됐다. 세숫대야 형태의 청동유물인 세, 향 피우는 그릇인 향완, 굽 달린 사발 모양 그릇인 대부완, 발우, 대접, 숟가락과 같은 청동유물도 함께 발견됐다. 유물 중 금강령에는 오대명왕상(五大明王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함께 배치돼 있는데 이 같은 문양이 국내에서 발견되기는 처음이라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조사단은 이들 불교 공양구가 영국사와 관련된 유물임은 확실하지만 고려 시대에 이미 존재가 확인되는 도봉원 또는 도봉사라는 사찰과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청동제기에서 `도봉사`라고 새긴 글자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사가 원래는 고려 초기에 모습을 드러내는 도봉사라는 사찰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창엽 서울문화유산연구원 실장은 "공양구 대부분을 11세기 이전 작품으로 봐야 할 것 같다"면서 "금강저와 금강령은 시기가 더욱 빨라 9~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배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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